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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석,서진 룸살롱 사건, 섬마을 청년이 칼잡이가 된 이유는

등록일 2020년11월19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서진 룸살롱 사건이 언급됐다.

 

서진룸살롱 사건은 1986년 8월 14일 서울 강남에서 조폭들의 칼부림이 벌어지면서 한번에 4명이 살해된 잔혹한 사건으로 가해자 고금석은 사형수가 됐다.

이날 방송에서 삼중스님은 "승려 생활을 60년 하면서 그렇게 괴로운 적은 없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스님은 "고금석이 매일 새벽에 참선하고 삼천 배를 했다. 그 정도 하면 무릎에 피가 난다. 그래도 거르지 않고 했다.
 
자신이 죽인 사람들을 떠올리며 참회했다"고 말했다.
 

 

서울 목포파와 맘보파 사이의 세력 다툼. 서울 목포파의 기습파에 맘포바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룸살롱 복도는 순식간에 비명과 고함소리로 가득 찼다.

 

트렁크에 있던 흉기로 무장을 한 서울 목포파는 17호실의 문을 부쉈다.

 

형사는 “사시미 칼 있잖아요, 그거를 막 찔러대는데 피가 완전히 막”이라며 당시의 참혹했던 기억을 전했다.

 

장항준 감독은 “그날 맨 앞에서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던 사람이 오늘의 주인공 고금석이야”라며 “23살에 젊은 나이의 대학생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칼을 들고. 훗날 고금석이 법정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대. ‘피를 보는 순간 눈이 뒤집혀서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고금석의 주변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납득하지 못했다고. 장도연은 “아버지는 낙도에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섬마을 주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분이셨다.

 

어머니도 동네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 분이셨다”라고 전했다.

 

고금석의 목표는 돈을 벌어 일을 하다 다리를 다친 어머니를 위한 자가용을 사드리는 것이었다고 전해졌다.

 

꿈을 찾아 서울로 향한 고금석은 자취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자취방을 오가던 선배중 장씨가 있었다.

 


 

장씨는 고금석을 눈여겨 봤고, 그에게 일을 해보자며 제안해 데려간 곳이 나이트 클럽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다른 체격을 가지고 있던 고금석은 이후 서울 목포파에 발을 들이게 됐다.

 

고금석이 숨지기 전 직접 남긴 편지에는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라며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는 내용과 섬마을 아이들의 바다 여행을 부탁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극악무도한 살인사건의 범죄자였지만 방송에선 고금석을 아이들에겐 고마운 사람이었던 '키다리 아저씨'라고 소개했다.

이후 누리꾼들은 "이방송 뭐하자는 거임?", "피해자들 억울함은 생각도 안하는건가", "고금석이 키다리아저씨면 오원춘, 조두순은?"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오후 10시 35분 방송된다.

 

타임포스트 www.time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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